뇌전증을 치료하고 아이들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저와 같은 의료진에게는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제게 이런 보람을 느끼게 해 준 한 환자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만 3세 환자가 발달 지연을 보여 외래로 방문하였습니다. 다른 발달은 그럭저럭 따라갔지만 표현 언어(말하기) 발달 지연이 심했고 따라서 인지 발달에도 문제를 보였습니다. 발달 지연의 원인을 찾기 위해 검사를 하였지만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외래에서 추적 관찰하며 진료를 보던 중 환자가 하루에도 수십 번, 십여 초 동안 멍하게 있는 것을 추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 뇌파에서는 경련파만 발견되고 환자가 왜 심한 표현 언어의 지연을 보이는지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장시간 비디오 뇌파 검사를 하였고 이 검사에서 환자는 근간대 결신 발작을 하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결신 발작(소발작)과 근간대가 동시에 나타나는 발작입니다. 이런 경우 표현 언어의 심한 지연이 동반될 수 있습니다.
장시간 비디오 뇌파 검사는 난치성 뇌전증인 경우에만 의료 보험이 되고 이렇게 처음 진단 받는 환자에서 진단을 위한 검사로는 급여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특히 발달 지연을 보이는 소아나 성인의 경우 발작 및 뇌전증 감별에 큰 도움을 줍니다. 소견서까지 작성해가며 검사를 하였고 결국 근간대 결신 뇌전증을 진단하였습니다. 이 뇌전증에 효과적인 약을 바로 시작하였고 발작이 잘 조절되면서 환자의 표현 언어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건강한 다른 아이들만큼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언어 기능이 조금씩 좋아져서 어느 정도 말도 하고 인지 기능도 이전 보다 좋아지는 경과를 보았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끔까지 특별한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발달 지연의 원인을 못 찾다가 뇌전증이 그 원인인 것을 발견하고 치료하여 증상이 호전된 의료진으로 매우 기쁜 증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드물지 않게 뇌전증 자체가 발달을 방해하고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아 연축이 대표적인 경우이지요. 이런 경우 약물로 치료를 하면 오히려 이전에 못하던 것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께서 약물을 시작할 때 약물의 좋지 않는 작용을 많이 걱정하시는데, 대부분의 경우 부작용에 비해 치료로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에 시행하는 투약임을 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해당 약물의 부작용을 잘 알고 발견될 경우 담당 선생님과 잘 상의하셔서 대처하시면 대부분의 경우 안전하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