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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을 앓은 역사속 위인들

빈센트 반 고흐




너무나 유명한 화가라 학교에 다니면서 그의 작품들을 많이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같은 간질을 앓았던 사람인 것을 알고 계신 분은 드물 것입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곤궁한 생활 속에서 고흐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가 실제로 작품생활은 한 것은 10년 남짓 되며 그는 간질발작 후 입원한 병원에서 생애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200여 점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고흐의 생애를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1953년 3월 30일 개신교 목사의 6남매 가운데 맏아들인 반 고흐는 네덜란드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의 목사관에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그는 시골 들판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를 좋아했고 16세 때 숙부가 일하고 있는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 수습사원으로 들어간 것이 그의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화랑에서의 일은 날마다 예술 작품과 접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곧 렘브란트와 할스를 비롯한 네덜란드 화가들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한 화가는 당시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스 화가 밀레와 코로였고 평생 이 두 화가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23세 때 구필 상회에서 해고되고 1877년 네덜란드의 도르트레흐트에서 책방점원으로 일했다. 그는 책방점원으로 일하면서 신앙심이 한층 돈독해져 인간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욕망에 이끌려 성직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정통교리의 접근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여 교회 당국과 잇따라 충돌을 일으켰고 3개월의 연수기간이 끝난 뒤 복음전도사로 임명을 받지 못하자 벨기에 남서부의 탄광 지역인 보리나주의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선교사업을 하러 떠났다. 1879~80년 겨울 이곳에서 그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는 이유로 선교활동을 그만두어야 했고 처음으로 커다란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빈털터리에다 믿음마저 잃어버린 그는 절망 속에서 모든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27세 때(1880년) 드디어 자신의 천직을 발견했다. 반 고흐는 예술을 통해 인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창조력을 깨달으면서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

1888년 크리스마스 전날에 반 고흐는 발작을 일으켜 왼쪽 귀의 일부를 잘랐고 2주일 뒤에 '노란 집'으로 돌아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과 몇 점의 정물화 및 '아기를 재우는 여인'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몇 주일 뒤, 그는 다시 간질로 인한 심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 고흐는 정신병원에 12개월 동안 갇혀 있으면서 되풀이되는 발작에 시달리고 평온한 기분과 절망적인 기분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도 이따금 그림을 그렸다. '정신병원의 정원', '알피유 가족', 의사들의 초상화,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밀레의 그림들을 본뜬 모작 등 이 시기(1889~90)에 그의 작품을 지배한 주된 특징은 현실과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일종의 슬픔이다. 오랫동안 정신병원의 독방이나 정원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주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데다 자신의 영감이 직접적인 관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그려야 하는 현실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고 강렬한 색채를 부드럽게 만들고 좀더 차분한 그림을 그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흥분을 억제할수록 상상력이 더욱 넘쳐서 구성요소들의 극적인 효과에 몰두하게 되어 역동적인 형태와 힘찬 선에 바탕을 둔 표현양식을 개발했다.

1890년 5월 친구이고 애화가이고 자신의 주치의인 신경정신과의사 가셰와 함께 지내기 위해 가셰가 사는 오베르로 가서 4년 전 누에넨을 떠난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시골 마을로 돌아간 그는 처음에는 열성적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옥수수밭, 강이 흐르는 골짜기, 농부들의 오두막, 교회, 읍사무소 같은 주제들을 선택한 것을 보면 그가 정신적으로 위안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화풍도 달라졌다. 북부의 햇빛 속에서 그는 옅으면서도 산뜻한 색조를 택했다. 붓놀림은 더욱 폭넓어지고 한결 풍부한 표현력을 갖게 되었으며, 자연에 대한 시각은 보다 서정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가셰와 벌인 말다툼, 어쩔 수 없이 동생 테오(그는 결혼하여 아들 한 명을 낳았음)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데서 오는 죄의식,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데 따른 열등감 때문에 고독을 이겨내거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한 그는 스스로 총을 쏘아 자살을 시도했고 이틀 뒤엔 세상을 떠났다(1890.7.29). 공교롭게 동생 테오도 그로부터 6개월 뒤 (1891. 1. 25) 만성 신장염으로 형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오베르의 조그마한 묘에 합장되어 있다.

방울이 2011.09.24
어느책을 읽어보니, 고흐가 알려주신것처럼, 뇌전증을 앓았던것이 아닌, ""메니에르병"을 앓았었다고 하더라구요.
"메니에르병"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이비인후과와 관련있구요.
그책이 잘못 알려준것인지는 몰라도, 다시 한번 조사를 해주셨으면 해요.^^
이덕호 2013.10.26
고흐의 질환에 대하여 정보가 혼란하네요. 방울님의 주신정보도 무시할 수 없구요. 확실하게 뇌전증환자인지, 아니면 메니에르환자인지? 아니면 두명중 하나로 인하여 뇌전증과 메니에르를 함게 고생을 했는지?
어찌 되었던 병과 사우며 미술의 삶을 심었던 고흐의 삶을 존경하고 싶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여도 겁부터 먹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서수영 2015.06.13
여기서 혹시 뇌전증 앓고 계신 분들???없으신가요?? 이런거 여쭤보는 이유는 여기서 친구만들려고...저도 뇌전증 환자거든요...그래서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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