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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잘 다루고 관리해서 착하게 만들기 (서울브레인신경과 이일근)
세련된 회사원 느낌의 20대 후반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섭니다. 화사한 외모와 대조적으로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합니다. 고객의 금융 상담을 많이 하는 직업인데, 최근에 몇몇 고객들과 상담에서 중요한 업무를 실수하였고 그 실수로 인하여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직장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그저 과로에 의한 실수라고 생각하지만, 동료 직원들은 예전과 좀 다르고 넋이 나간 듯 실수가 잦아졌다고 꼭 병원을 방문하라 조언하였습니다. 당장 병원 진료는 하지 않았으나 걱정하면서 스스로 잘 관찰하니 가끔 기억이 끊기고 그로 인해 업무 수행에 문제가 발생한 듯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기억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고 걱정하였습니다. 일상 생활과 회사 생활의 어려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친숙한 후에 조심스럽게 '뇌전증'의 한자인 腦電症의 의미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체험한 증상이 뇌전증일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확인을 위해 시행한 뇌파검사에서 뇌전증 소견이 관찰되어 상황을 잘 설명한 후 약물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진료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이 상황에서 우리 환우들이 처음 진단받을 때 전후에 진단 자체로 인하여 상심하고 걱정하면서 놓치기 쉬운 몇 가지 사항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증상이 발생하기 시작할 때 많은 사례에서 질병을 의심하기보다는 그저 과로나 스트레스, 혹은 환경 요인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쉽게 넘기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증상이 반복될 때는 단순히 저절로 좋아질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상심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항경련제 치료를 통하여 십중팔구 증상을 조절하고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앞의 사례에서도 20대 회사원 여성은 곧 증상이 조절되어 회사에서 업무도 실수 없이 처리하고 동료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건강할 때 만들었던 동료들과 순탄한 관계에서 질병을 진단받고 어려운 상황에서 직장 내 적응이 매우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질병을 잘 조절하고 극복하면서 어려웠던 동료들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니 처음보다 훨씬 더 돈독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적절한 대처입니다. 진료를 지속하면서 이 여성은 결혼과 출산과 미래의 가정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또한 걱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임신과 출산에 안전한 약물을 선택하고, 미래의 배우자에게 이해를 구하고, 생활을 잘 관리하면서 한 단계씩 대처한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실제 이 여성도 지금까지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가족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이라고 귀에 굳은살이 생기도록 반복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요즘은 이 여성도 어느 정도 삶에 자신을 가진 듯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제가 경험하기로는 별로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행복해 보이고 아무 걱정 없이 보여도 다들 인생의 고난을 등에 지고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등에 지고 있는 고난이 아니라 하루하루 같이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의 사랑과 행복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으로 힘들어도 그 고난을 씩씩하게 감당하고 극복하여 꿋꿋하게 행복을 찾아가는 우리 에필리아 가족들이 되시기를 항상 기원합니다.
서울브레인신경과 이일근
